[책서언] 실록 대한민국민법 1, 법문사, 2008
머 리 말
1958년 2월 22일 토요일, 법률 제471호로 ‘民法’이 공포되었다(『官報』 제1983호, 245~296면). 그러니 민법전은 오늘로 탄생 5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知天命’을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이 ‘5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민법은 양과 질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사회·문화 환경의 변화에 따라 법현실도 빠른 속도로 변하여 세계의 사법(私法)은 거센 변화의 물결 속에 휩싸여 있으며, 우리도 물론 그 속에 존재하고 있다. 세계 10위권에 근접하는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 50살이나 된 민법을 가진 나라의 사법이 단순히 세계 법문화의 수혜국(受惠國)에 머물러 있는 것은 태만이다. 이제는 우리도 세계 법문화의 진보에 기여하여야 한다. 이를 위한 기본전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한국 민법전의 제정과정에 유의하고자 한다. 입법과정에서 무슨 고민을 했고 그 고민을 어떻게 해결했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민법의 해석론 및 입법론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민법 제정 당시의 입법자도 이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즉 후세를 위하여 부족하나마 입법자료를 소중하게 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후세는 그 요청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간 법해석에 있어서 입법자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다. 의용민법 시대에 학설이 대립하였던 문제에 대하여 입법자가 결단을 내려 그 중 하나의 학설을 선택한 결과가 현행법임에도 불구하고 해석론은 의용민법 시대의 학설을 재연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약 10년에 걸쳐 이루어진 민법전 제정과정에서의 논의를 건너뛰는 것은 선학(先學)들에 대한 도리도 아니거니와 매우 심각한 학문적 비효율과 낭비이다. 우리 민법전 제정의 역사를 생각하면 대체로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타율적인 법의 근대화, 일본 민법전 내지 일본 민법학의 영향 아래에서 만들어진 민법전, 입법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입법자료가 극히 미약한 민법전, 시간에 쫓겨 서둘러 제정하다 보니 ‘졸속입법’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하는 민법전... 사실 우리 민법전은 태생적으로 그와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들은 매우 추상적 또는 개괄적인 것일 뿐, 구체적인 사항을 들어 그 평가를 증거하는 작업은 아직까지 미약하였다. 1000개가 넘는 대한민국 민법전의 모든 조문이 일본 민법의 그늘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정교한 분류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정작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한 것조차도 일본 민법학의 그늘 속에 묻혀 버리게 된다. “불행하게도 우리 민법전의 제정과정에서는 기초이유서와 같은 것이 없다...”라는 식의 푸념은 지금까지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에게 남아있는 자료라도 힘써 발굴하고 현대화하는 일이다. 그 사료(史料)들을 토대로 우리 민법전의 조문 하나하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가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입법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 즉 과거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 없이는 앞을 향한 발걸음에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여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생각에서 기획된 것이다. 이 책은 민법전의 입법과정을 조문 단위로 추적한 문헌이다. 법전편찬위원회(法典編纂委員會)의 민법전편찬요강(民法典編纂要綱)으로부터 시작하여 1958년 민법이 공포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후의 개정상황을 포함하여 현행 민법의 내용을 보여준다. 민법전의 조문 전부를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낼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권으로 묶기에는 벅찬 양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일단 민법 ‘제1편 총칙’ 부분을 『실록 대한민국 민법 1』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하고 이어서 ‘제2편 물권’(『실록 대한민국 민법 2』)와 ‘제3편 채권’(『실록 대한민국 민법 3』) 부분을 차례로 출간할 계획이다. 이 책을 집필함에 있어서 평가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절제하였다. 이 책이 모든 사람들에게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史料’로 제공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이 그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도 없지 않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에는 사료라는 사료는 샅샅이 찾아 소개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자료를 탐색하다 보니 무용한 반복 정도에 해당하는 것도 적지 않았다. 그리하여 원래의 의도와 달리 사료에 대한 취사선택이 비교적 과감하게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료를 놓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도 이 책이 작업의 끝이 아니기에 일단 매듭을 짓기로 결심하였다. 우리 민법전은 많은 사람들의 협력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제정과정을 통해 볼 때 특히 두드러진 역할을 수행한 두 인물은 金炳魯와 張暻根이다. 金炳魯는 법전편찬위원회 위원장 겸 민법분과위원장으로서 민법전의 기초작업을 주도하였다. 張暻根은 법전편찬위원회가 출범할 때에는(1948년) 법전편찬위원회 민법분과위원(특히 신분법의 책임위원)으로서 민법전의 기초작업에 참여하였다. 그 후 1954년 제3대 민의원 선거를 통하여 국회의원이 되어 법제사법위위원회 민법안심의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민법안의 예비심의를 주도하였고 본회의의 심의과정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金炳魯는 일제강점기의 애국행위로부터 시작하여 해방 후에는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대한민국 사법부의 기틀을 다진 법조인이다. 張暻根은 엘리트 교육과정을 거쳐 일제강점기부터 판사를 지냈고 해방 후에는 李承晩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정치활동을 하였다. 이 책의 주된 참고자료는 ①『民法案審議錄 上卷』, ②『民法案意見書』, ③『國會速記錄』, 이렇게 세 가지이다. 이 중에서 ①·②에 대해서만 간단히 소개한다. ①은 민의원 법제사법위원회 민법안심의소위원회에서의 심의내용을 기록하여 1957년 발간한 것으로 민법전 제정에 관한 입법자료 중 가장 체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②는 民事法硏究會(현재 사단법인 한국민사법학회의 전신)에서 1957년에 발간한 것으로 민의원 법제사법위원회의 수정안에 대하여 민법학자들이 개진한 의견을 종합한 것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사람들이 수고를 했다. 엄정현 군은 자료수집 작업을 총괄하는 수고를 하였다. 연구실 조교인 박사과정의 이홍민 군은 문헌 분석과 정리 작업에 정성을 다했다. 석사과정의 이제우 군과 황희윤 양은 원고교정을 맡아주었다. 이서현 양은 예술적 감각으로 이 책의 표지 디자인을 맡아 주었다.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이들의 앞날에 늘 힘찬 발전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 책의 학문적 유용성을 이해해 주시고 기꺼이 출판을 맡아주신 법문사의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한다. 처음에는 간단한 논문으로 민법전의 50회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자료를 조사·정리하는 과정에서 계속 흥미가 일었고 그러다가 끝내 이렇게 일이 커지고 말았다. 이 책이 우리 민법학의 발전에 작지만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면 큰 기쁨이 될 것이다. 2008년 2월 22일, 대한민국 민법전의 50회 생일을 축하한다. 앞으로 더욱 건강하고 우아한 법이 되기를 기원한다.
2008년 2월 22일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연구실에서 명 순 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