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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혼혈’이라는 말의 운명

‘혼혈’이라는 말의 운명

명 순 구 (고려대 법대 교수)

‘혼혈’(混血)의 문자대로의 뜻은 피가 섞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사람 중에 혼혈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피의 반은 아버지로부터 또 그 반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혼혈’에 대하여 국어사전은 “다른 종족과 통혼(通婚)하여 두 계통의 특징이 섞임. 또, 그 혈통.”으로 풀이하고 있다. 즉 ‘혼혈’이라는 단어의 사회적인 의미는 단순히 피가 섞였다는 것 이상이다. ‘혼혈아’ 또는 ‘혼혈인’이란 종족의 계통이 각기 다른 부모로부터 태어난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렇다면 부모가 종족을 달리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여기에서 종족이라는 것이 인종의 의미인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한국인은 인종적으로는 몽골계통이라고 하지만, 몽골 사람과 한국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혼혈아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혼혈이라는 것이 부모의 국적을 기준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가령 부모 모두 내국인이지만 아버지가 결혼전에 귀화한 백인이라면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혼혈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정을 종합해 보면, 혼혈이 아닌 사람은 부모 모두 한국국적자이며 부모의 인종이 순수 한국종족인 경우이다. 그렇다면 순수 한국종족은 무엇인가? 과연 그러한 종족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까?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어린 나로 하여금 자부심을 느끼게 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한 단일민족이다!”라는 것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한 가족과 다름없으니 당연히 평화만이 가득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머리가 조금씩 커지면서 이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단일민족이라는 사실과 사회평화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단군의 자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우리 집안의 역사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는데, 그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에 25대조 할아버지께서 중국으로부터 이 땅으로 이주해 오셨다는 것이다. 수 만년 수 십만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다른 나라에서 이 땅으로 이주해 온 사람이 어디 우리 조상뿐이겠는가? 땅과 바다의 길을 통하여 온누리의 사람들이 때로는 무리를 지어 때로는 하나 둘 씩 이 땅을 들락날락거렸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혼혈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어찌 보면 사람은 모두 혼혈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혈’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처럼 차별적인 의미로 쓰이는 나라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혼혈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큰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나라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백인종들 중에서 덜 떨어진 족속들도 피부색을 가지고 차별하는 경우는 있지만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그의 의지와 아무 상관이 없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된 결과를 들어 차별하는 일은 당사자에게 고통이기 이전에 분노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은 인권침해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은 밥상으로부터 일정한 사람들을 축출함으로써 내 뱃속만을 보다 든든히 채워보고자 하는 비린내 나는 탐욕에 불과하다. 오죽 할 게 없어서 피를 가지고 편을 가른단 말인가? 미군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 최고의 여성 래퍼로 인정받는 20대의 한 가수가 새 앨범을 내면서 “미국인·한국인·흑인 사이에서 늘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어디 그 가수의 일이기만 하겠는가? 우리나라 법에도 ‘혼혈’에 대하여 이를 특별하게 다루는 규정이 있다. 병역에 관한 법령이 그 예이다. 병역관계 법령에 따르면,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아 및 부의 가에서 성장하지 아니한 혼혈아’는 범죄전과가 있는 사람 등과 마찬가지로 제2국민역으로 편입된다(병역법 제65조 제1항 제3호, 병역법시행령 제136조 제1항 제2호 나목 참조). 국회 국방위원회의 병무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 국회의원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헌법 제39조에는 가족생활에 있어 양성 평등을 보장하도록 돼 있다.”;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지므로 혼혈아든 부모 중 어느 쪽에서 양육하였는지와는 관계없이 평등하게 병역처분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난 2000년 이후 외관상 식별이 명백하지 않은 혼혈아 중 아버지의 집에서 자라지 않은 혼혈아 12명이 제2국민역에 편입됐다.” 이에 대한 병무청의 답은 이러했다: “입영 가능한 혼혈아 수가 매우 적은데다 입영하더라도 복무생활 부적응, 집단 따돌림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제2국민역으로 편입하고 있다.” 병역과 관련하여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혼혈아를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혼혈아’와 그렇지 않은 혼혈아로 다시 세분하는 병역법시행령의 태도는 야만적이기까지 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그런 취지에서 얼마 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잠깐 혼혈에 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다. 교육적 의미도 있다는 판단 아래 ‘혼혈아’라는 말을 좀 더 순화된 다른 말로 바꾸는 것도 제안하였다. 가령 ‘청소부’를 ‘환경미화원’으로 바꾸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같은 순기능을 생각한 것이었다. 300명에 가까운 학생들에게 출석표를 나눠주면서 그 곳에 학번·이름과 함께 ‘혼혈아’를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써서 다음 시간까지 제출하라고 말하였다. 약속 시간에 출석표를 거두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성의가 전혀 없어 보이는 것에서부터 고민의 흔적이 배어있는 것까지 정말 다양한 단어들이 적혀있었다. 그 중에 단연 눈길을 끈 것은 ‘온새미’였다. 그 단어를 제안한 학생이 적어놓은 내용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 ‘온새미’란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긴 그대로의 상태”를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아버지의 피, 어머니의 피에 집착하여 가르지 않고, 그들 사이에서 출생한 아이는 그냥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붙여보았습니다. 어렵지 않게 ‘온새미’가 ‘혼혈아’를 대체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을 하였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다른 생각이 밀려들었다. ‘혼혈아’를 ‘온새미’로 변경한다고 별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 몇몇 학생들은 ‘혼혈아’를 대신할 단어를 찾을 것이 아니라 ‘혼혈아’라는 단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새로운 단어에 대한 제안을 할 당시에 나로서도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혼혈인 내지 혼혈가정에 대하여 ‘Affirmative Action’이 요구될 것이고, 그 프로그램의 이름을 붙인다든가 하는 경우 등을 위해서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온새미’를 앞에 놓고 생각해 보니 새삼스럽게 용어를 창설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온새미’라는 말이 너무 우아하다는 것이 결정적 약점이다. 우아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할 것이고 즐겨 사용하다 보면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화를 사랑하고 사회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 분명할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비합리적 차별은 궁극에 가서는 사회평화에 대한 결정적인 장애사유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 차별의 부정적 결과들은 모두 고스란히 사회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소수자를 품는 일은 단순히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 결코 아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 일을 하지 못하면 이 땅에 진정한 평화는 없다. ‘혼혈’이라는 말은 우리 문화수준의 발전과 함께 서서히 그 속에서 차별의 의미가 퇴색되어야 할 운명이다.

<2007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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