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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지하철 열차 안에서 달리는 일

  • 명순구
  • 2006년 9월 30일
  • 2분 분량

지하철 열차 안에서 달리는 일 명 순 구 (고려대 법대 교수)

사람이 살다 보면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아주 옛날에는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녔을 것이다. 지금 이동의 목적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도 사람에게 있어서 장소이동은 생활 그 자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경우에 이동의 속도가 경쟁력이 되다보니 좀 더 빠른 이동을 위하여 지혜를 짜냈고, 그 결과 이제 소리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장소를 이동함에 있어서 자동차와 같은 탈것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가장 빠른 방법은 물론 뛰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발보다 빠른 탈것을 사용한다는 것이 늘 신속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도로가 꽉 막힌 상황이라면 그냥 걸어가는 것이 가장 빠른 이동방법일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느린 걸음보다는 종종걸음이, 종종걸음보다는 뜀박질이 목적지에 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만약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면 사정은 아주 달라진다. 어떤 곳을 가고자 하는데 거기로 통하는 모든 도로가 자동차로 꽉 막혀 있다면 으레 지하철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일단 지하철을 타고 나면 이제는 달릴 필요가 없다. 지하철 안에서 이리저리 뛴다고 하여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단 지하철을 탔다면 목적지의 역에 도착할 때까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역에서부터 최종목적지까지 빠른 걸음으로 달려갈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이다. 지하철 열차 안에서 달리는 일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다.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보면 지하철 열차 안에서 달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때가 가끔 있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성숙되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환경이 성숙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도 시간의 경과가 필수적이며 그 기간 동안에는 이리저리 허둥대지 말아야 한다. 마치 달리는 열차 안에서는 뛰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히 뛰어야 할 상황인데 뛰지 않고 어슬렁거린다면 그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뛰지 말아야 할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뛰는 것도 아름답지 못한 일이다. 모든 일이 서두른다고 되는 것은 아닌 법인데 사람 안에는 늘 질주하고자 하는 본성이 숨어있는 것일까?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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