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히딩크 감독이 한국인일 필요는 없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인일 필요는 없다 명 순 구 (고려대 법대 교수)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다. 월드컵 첫 승을 목표로 했던 것이 이제는 이미 8강을 달성하고 우승까지도 생각하는 환희에 넘쳐있다.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의 놀라운 성적을 앞에 놓고 선수들에 대한 격려와 히딩크 감독에 대한 찬사가 보기 좋은 모습이다. 다음은 요즘 신문기사의 일부이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의 국적법까지 바꿀 전망이다. 법무부는 한국의 월드컵 출전 사상 첫승, 첫 8강 진출의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국가대표 축구감독이 최초의 ‘명예 한국인’이 될 수 있는 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17일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한 히딩크 감독에게 한국 국적을 주자는 국내 여론을 참작해 명예 국적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출신인 히딩크 감독은 현행 국적법상 “법무부 장관은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한국 국적을 줄 수 있다”는 예외조항에 해당돼 까다로운 귀화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법무부는 이 예외조항에 근거해 법무부 예규를 개정, ‘명예국적제도’ 신설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외국 저명인사들에게 ‘명예시민’ 자격을 부여한 적은 있으나 국가적으로 외국인에게 '명예국적'을 준 사례는 없다. 명예 한국인이 되면 ‘국민증’을 발급받게 되나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는 갖지 않는다. 물론 히딩크 감독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최초의 명예 한국인’ 탄생은 무산되지만, 현재로서는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주위의 관측이다. 법규를 개정하면서까지 명예국적을 부여한다? 넓은 세상에 별일이 다 있지만 이런 것은 처음 들어본 얘기여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나도 히딩크 감독이 참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을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감독과 선수 사이에 단단한 신뢰와 뜨거운 사랑이 필요했을 것이다. 스무 명이 넘는 선수들을 지휘하기 위해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히딩크 감독은 우리 국민의 친구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따뜻한 친구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지 그의 국적이 왜 우리와 같아야 하는가? 국적과 우정은 아무 관련성이 없는 것 아닌가? 친구와 내가 같은 국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시각은 촌스러운 생각이다. 만약 우리 여론과 언론이 히딩크에게 한국국적을 은근히 강요한다면 그것은 세계인권선언에도 반하는 일이다. 세계인권선언 제15조는 국적이탈과 국적취득의 자유를 정하고 있다. 히딩크에게 한국 국적을 주어야 한다는 마음에는 한국인이 아니면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은 슬픈 일이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 국적의 걸출한 축구지도자로서 모든 한국 사람들의 친구이다. 국적이 다르다는 것은 그와 우리 사이의 우정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
[200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