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어느 도마뱀의 수난과 '부적절한 관계'의 수입
어느 도마뱀의 수난과 '부적절한 관계'의 수입 명순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작년 여름 어느 일요일 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등산로에 대여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이들의 눈은 어느 한 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일까?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손가락을 서서히 땅으로 접근시키며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자그마한 동물이 하나 있었다. 도마뱀이었다. 이 도마뱀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보통 도마뱀 같으면 사람이 곁에 다가가면 순식간에 아주 능숙하게 자취를 감추는 법인데, 이 도마뱀은 여러 사람이 자기 곁에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자리를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이 도마뱀의 모습이 매우 지쳐 보였다는 것이다. 거기에 있던 한 사람이 말하는 사건의 경과는 이러하였다. 그가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중에 갑자기 어디에선가 이 도마뱀이 나타났는데, 여느 도마뱀과 달리 이 도마뱀은 굳이 등산로를 따라 도망치더라는 것이다. 등산로를 따라 걸을 수밖에 없는 그 사람으로서는 본의 아니게 도마뱀을 쫓아가는 모양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녹초가 된 도마뱀은 이제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 도마뱀은 자기를 줄기차게 쫓아온 그 사람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 원수 같은 추적자와 어울려 웅성거리던 사람들 또한 원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마뱀의 고난은 그 자신이 길을 잘못 선택한 데에 기인했다는 점에서 볼 때, 사람들이 그 도마뱀으로부터 원망을 듣기에는 무언가 억울하다. 만일 그 도마뱀이 여느 도마뱀과 같이 적절한 길을 선택했더라면 그런 수난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좀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도마뱀이 기력을 회복하여 도마뱀 마을로 돌아간 후에 그의 친지들에게 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세상에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더라. 글쎄 그렇게 무자비하게 끝까지 나를 쫓아오는 거야. 참으로 재수 없는 사람이야." 자기가 어떤 길로 갔는가 라는 중요한 문제는 쏙 빼고 이렇게 말하면 억울한 등산객을 원망하는 도마뱀의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등산로를 따라 도주하는 것이 숲길로 가는 것보다 더 빠르고 간편하다는 생각으로 그 도마뱀이 그리 한 것일까? 사람들 중에도 빠르고 간편하기는 하나 바르지 못한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전 국방장관이 재임시절에 하라는 무기수입은 하지 않고 어떤 여자와 함께 미국으로부터 '부적절한 관계'를 수입하였다던가? [고대신문(2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