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자 원칙 고수하는 이슬람은행
무이자 원칙 고수하는 이슬람은행 [매경이코노미 2002-06-14 23:07] 이란이 6월 해외자본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한다. 유로시장에서 내놓을 채권은 5억유로(5900억원)어치. 자본주의 관점에서 국채발행이 그다 지 특별한 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슬람권 국가의 정책으로서 는 파격적인 사건에 해당한다. 사실상 이란을 지배하는 이슬람 율법(Shariah)은 이자를 주고받는 고 리대금업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채조달에 따른 이자 지급 역시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슬람공화국으로 바뀐 지 23년만에 처음으로 국채를 발행하는 이란 에서도 율법학자와 경제학자 사이에 격론이 끊이지 않았다. 돈뿐 아니라 곡식 등을 빌려준 경우에도 빌려준 양 이상을 돌려 받을 수 없다. 이 율법은 이슬람교도라면 누구라도 지켜야 할 철칙이다. 이슬람교도 사업가인 오스만 압둘라. 그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MBA 를 취득한 엘리트. 미국에서 공부한 만큼 자본주의 체제에도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그도 이자에 대해서만은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알 라신이 명확하게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돈으로 돈을 버는 일 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죠.(Don’t make money on money)” 코란은 “상업에 따른 이윤은 허락하지만 단 1%의 이자도 금지한다” 고 명시하고 있다. 그는 고리대금금지 문구가 담긴 코란 2장 278절을 펼쳐보이며, “내가 이 율법을 어긴다면 사후에 큰 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 강조한다. 금융권도 무이자원칙을 지키기는 마찬가지다. 수적으로는 씨티뱅크, HSBC 등 외국계 은행을 중심으로 한 일반은행이 이슬람은행(Shariah Bank)보다 많다. 무이자를 고수하는 이슬람금융기관은 중동지역에 20 0여개만이 퍼져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라면 여유자금이 생길 때 주로 이슬람은행을 이용 한다. 외국과의 무역대금 같은 다국적 결제나 공과금 등 기본적인 업 무만 일반은행에서 처리하는 정도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최근호에서 이슬람교도의 저축습관과 무이자 이 슬람은행의 생존비법을 분석 보도했다. 포브스는 바레인 페르시아만주에 위치한 샤민은행을 예로 들었다. 줄 을 길게 서 있는 고객, 현금자동인출기를 고치는 직원 등 어느 시중 은행과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이슬람은행인 샤민은행은 저축계좌에 대해 고정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 이익을 내는 방법도 일반은행과 다르다. 이슬람은행은 예금주가 맡긴 돈을 제조 및 상업, 유통 등에 투자한다. 여기서 발생한 수익금 일부 를 배당 받아 예금자에게 일정비율에 따라 나눠주는 방식이다. 은행 은 이 과정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은행이라기보다는 투자신탁회사에 가까운 형태다. 돈을 빌린 사업가가 적자를 냈다면 은행은 예금주에게 한푼의 배당액 도 줄 필요가 없다. 대출기업 경영실적이 나빠져 예금주가 배당액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이슬람교도 예금주는 “이슬람의 관점에서 돈은 기업에 투자해 반 드시 일정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사업이 실패해 예금주로서 돈 을 못 받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슬람교도로서 이자수입보다 종교적 실천에서 오는 만족감이 더 크 기 때문에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 같은 위험을 COBM, 다시 말해 ‘이슬람교도가 되기 위한 비용(the Cost of Being Muslim)’이라 해석했다. 이슬람은행이 투자대상으로 선택하는 상품도 까다롭다. 이 역시 율법 을 따르지만, 코란이 현대금융제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율법학자의 해석이 기본이 된다. ‘불확실성에서 이윤을 거둬서는 안된다’는 율법에 따라 헤지펀드에 대한 투자는 금지한다. ‘미리 계산하지 말라’는 코란 구절에 따라 선물계약도 못한다. 도박성이 강한 데이트레이딩도 불가능. 직불카드 는 허용되지만 신용카드 거래도 금지한다. 이슬람전용 채권을 제외한 다면 채권도 곤란하다. 명확히 허용되는 대상은 주식뿐이다. 주식투자는 기업체에 대한 투자 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약이 많다. “이자를 취급하는 금융 기관 주식은 당연히 살 수 없습니다. 담배와 술을 만드는 업체도 곤 란합니다. 메리어트호텔의 경우 호텔레스토랑에서 돼지고기를 공급하 기 때문에 금지대상이구요. 도박을 운영하는 업체에 대한 투자나, 피 임약이나 낙태약을 만드는 제약업체도 안됩니다.” 율법학자 야스비는 “심지어 AOL타임워너 같이 신사업으로 각광 받는 영화, 음반 등 엔터테인먼트 업체도 이슬람율법 관점에서는 대부분 음란물 생산업체라 투자가 불가능하다”고 밝힌다. 검증은 계속된다. 부채가 너무 많거나 외상거래액이 전체매출액의 45 %를 넘어서면 탈락이다. 이슬람 펀드매니저인 시디키는 “결국 부채 가 낮고, 비금융권이며, 윤리적인 기업이 가장 적합한 투자대상”이 라며 “이 기준에 따를 경우 다우존스 내 5200개 기업 가운데 1400개 정도가 해당된다”고 말했다. 이슬람 율법학자인 드로렌조는 “이자 없는 금융제도가 훨씬 남는 장 사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르헨티나 국가부도나 엔론 사태 모두 이자가 불씨”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슬람교에서 이자를 금지하는 이유는 분수에 맞는 삶을 살라는 뜻 입니다. 이자제도는 “지금 당장 써라, 내일 갚아라”고 부추기는 거 예요. 빚 때문에 부자가 될 수도 없고 세계경제는 혼돈에 빠질 수밖 에 없어요.”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투자대상이 까다로운 점은 문제다. 고 유가 덕분에 이슬람금융권 주머니가 두둑해졌지만 율법에 따르자니 투자대상이 마땅치가 않다. 이슬람 은행과 펀드에 투자된 주식펀드자금은 대략 1500억달러에 이 른다. 이슬람금융권 펀드매니저들은 세계증시 변동이 심하다 보니 수 익은 고사하고 대규모 손실까지도 우려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코 란의 해석을 두고 “현대에는 이에 맞게 변형돼야 하는 것 아니냐” 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투자매니저들과 이슬람율법학자 간 충돌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슬람은행에서 투자를 받는 기업도 문제다. 예금주에게 배당금을 적 게 주기 위해 이윤을 줄이고 손실을 늘리는 부도덕성을 보이기도 한 다. 게다가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가가 주로 이슬람은행을 찾는 부작용도 생긴다. 이자제도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집트에 선 이자를 경비로 가산하는 방식으로 이자지급문제를 피해가기도 했 다. “테러를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 어린 눈초리도 벗어나야 한다 . 9·11 사태 뒤 반테러수사로 불이익을 당할까 예금주들이 돈을 대 거 인출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그러나 바레인에 위치한 퍼스트이슬람 투자은행 압둘말릭 사장은 “이슬람은행은 과격하고 정치적인 이슬람 교도보다는 보수적이고 신실한 이슬람교도가 많이 찾는 편”이라 강 조한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테러조직과 연관이 있다고 지목한 이슬 람은행은 단 한 곳뿐이었다. <명순영 기자> <매경ECONOMY 제1159호>